가끔은 새벽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아주 오래된 흑백 다큐멘터리를 틀어놓는다. 전쟁 직후의 거리, 허물어진 담벼락, 폐허 같은 집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사람들. 그 화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 깊숙한 곳이 묘하게 저릿해진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다. 총을 든 적도 없고, 공습 경보를 들으며 지하로 도망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선 풍경 속에서 설명하기 힘든 향수를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이미 내 안에 각인되어 있는 어떤 ‘기억 이전의 기억’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피가 기억하고 있는 슬픔이라고 말하면 너무 오글거릴까. 그래도 나는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국경이라는 선 위에 선 사람
어릴 적에는 나라라는 것이 실체 있는 건줄 알았다. 지도책에 굵은 선으로 그어진 경계선들, 교과서에 적혀 있는 국토의 넓이와 인구 수, 국기, 국가(國歌)… 그런 것들이 나라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국경이라는 것은 물리적 선보다 감각적인 선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떤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을 때, 출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 외국에서 우연히 내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낯선 친밀감. “아, 이게 국경이라는 거구나.” 나는 그런 순간마다 깨닫는다. 나라란 땅덩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빛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에 생기는 투명한 공간이라는 걸.
전쟁이 끝난 지도 오래지만, 우리는 여전히 어떤 보이지 않는 선 위에 서 있는 듯하다. 남과 북의 경계, 세대와 세대의 경계, 이념과 이념의 경계. 국경은 지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들 속에, 표정 속에, 침묵 속에 있다. 나는 그 선 위에서 때로는 긴장하고, 때로는 불편해하고,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을 느낀다.
피와 언어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
외국에 나가 있을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언어가 나라라는 사실이다. 같은 말을 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동지감을 느낀다. 비행기 안에서 내 언어가 들려오면 자동으로 귀가 쫑긋해진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묘하게 안심이 된다. 이 감각은 참 이상하다. 나는 그 사람의 이름도, 삶도, 성격도 모르지만, 단지 모음을 끌고 자음을 튕기는 방식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풀어진다.
피는 과학이지만, 언어는 감각이다. 피가 이어져 있지 않아도, 언어가 닿으면 우리는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국적보다도 언어가 민족을 이루는 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같은 말을 한다는 것.” 그건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시간을 통과해 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나는 진짜 이 나라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국민이 되었고, 투표를 했고, 세금을 냈고, 나라를 배우며 자랐지만, 가끔은 이 나라가 나의 것인지, 내가 이 나라의 것인지 헷갈린다. 민족이라는 말은 언제나 우리를 묶는 동시에, 우리를 시험하는 말이다.
조용히 나라를 생각하는 방식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어쩐지 너무 큰 말을 입에 담는 것이 두려워서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방식으로 조용히 생각한다. ‘이 땅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말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이름을 부를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것도 일종의 사랑이 아닐까.
가끔 뉴스를 보며 분노하고, 어떤 정책에 실망하고,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투덜대다가도, 어느 날 길거리에서 할머니가 나에게 “젊은 사람 먼저 가요”라고 양보할 때, 나는 또 이상하게 마음이 뜨뜻해진다. 아, 그래도 이 나라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구나.
나는 거창한 구호보다 그런 순간들을 믿는다. 나라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함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에서 서로 부딪혀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짧은 숨결에서 유지된다고 믿는다. 조국은 국회가 아니라 골목에 있다. 민족은 역사책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냄새 속에 있다.
나는 아직도 조국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나는 이 나라를 떠올릴 때마다 조금 울컥한다. 이유는 모른다. 설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애국인지, 책임감인지, 죄책감인지, 혹은 유전자의 잔향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조국이란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지갑 속의 신분증을 꺼내 본다. 이름과 사진 옆에 새겨진 네 글자. 대한민국. 그 글자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울음이 목구멍에 차오르다가, 끝내 터지지 못한 채 다시 삼켜진다.
나는 그런 울음을 ‘조국’이라고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