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에 대한 단상 — 끌림과 밀어냄의 법칙

며칠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자석 하나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때 과학 시간에 쓰던 네모난 막대자석이었다. 붉은색과 파란색이 양 끝에 칠해져 있고, 중간은 손때와 먼지로 바래 있었다. 문득 그걸 들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아직도 이런 사소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실용성도, 추억도 거의 없는 이 쇳조각에 대체 뭐가 남아 있는 걸까.

책상 위에 놓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는 손끝으로 천천히 자석을 움직여 봤다. 옆에 있던 클립이 달라붙었다가 금세 떨어졌다. 힘의 방향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내가 움직이는 속도가 맞지 않아서일까. 그러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짧은 찰나에 어떤 익숙한 감정이 스쳤다. 사람 사이의 거리도 이 자석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


가까워질수록 밀어내는 힘

인간의 관계는 이상하다. 가까워지고 싶어서 다가가지만, 어느 순간 그 거리에서 더는 전진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자석의 N극과 N극처럼, 비슷한 온기를 가진 사람일수록 쉽게 충돌한다. 나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한때 아주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매일 연락했고, 함께 밥을 먹었고, 사소한 농담에도 웃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대화의 결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같은 문장을 들어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같은 상황을 겪어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같은 극이었다. 너무 닮아서, 서로의 단단한 중심이 부딪혀 버렸다.

자석은 완벽히 붙을 수 없다. 언제나 아주 미세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이 없다면, 오히려 힘이 사라진다. 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완벽히 하나가 되는 순간은 없다. 그런 상태는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서로를 인식할 수 있다. 너무 가까워지면 방향을 잃는다. 너무 멀어지면 끌림이 사라진다.

가끔 나는 인간관계의 이상적인 거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붙지 않고, 흩어지지 않는 정도.” 그 미묘한 균형 위에서만 온기가 흐른다. 자석은 서로를 당기지만, 동시에 밀어낸다. 그 두 힘이 정확히 맞서 있을 때, 비로소 형태를 유지한다. 사랑도, 우정도, 가족도 결국엔 그런 힘의 조율로 버틴다.


우리가 서로를 붙잡는 방식

자석은 무언가를 끌어당기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그 끌림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철가루는 잠시 자석에 달라붙어 있다가도, 아주 작은 충격이나 방향의 변화로 쉽게 떨어진다. 마치 인간의 마음처럼. 어떤 관계는 단단히 붙어 있는 듯 보이다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흩어진다.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힘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몇몇 사람을 잃었다. 의도한 적은 없었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다. 자석의 극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내 안의 철분이 녹슬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밀어냄이 꼭 ‘싫어서’ 일어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너무 끌렸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가까워질수록 위험해지는 관계가 있다. 자석의 힘이 강할수록, 충돌의 속도도 빠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어떤 사람의 연락처를 눌렀다가 지운다. 말하고 싶은 문장을 적었다가, 전송하지 않는다. 손끝에서 멈춘다. 그것이 자석의 간극이다. 붙을 수도, 완전히 떨어질 수도 없는 상태. 그 중간의 공간에 머무르는 것. 거기서만 관계는 오래 버틴다.

자석을 손에 쥐고 있으면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붙잡는 힘은 표면이 아니라 내부의 보이지 않는 자성(磁性)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건 외형과 무관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 보여도, 어떤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의 내면 어딘가에서, 내 안의 철분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힘에 이끌려 살아가는 걸까. 사랑이라는 말로도, 습관이라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끌림. 때로는 그 힘 때문에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나는 몇 번이나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도시로 향했고, 어떤 관계로 빠져들었고, 또 어떤 일을 시작했다. 이성적으로는 계산되지 않는 방향의 변화. 그것이 나를 살게 했고, 때로는 무너뜨리기도 했다.

요즘 나는 자석을 볼 때마다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자석은 자신이 무엇을 끌어당기고 무엇을 밀어내는지 정확히 안다.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그건 본능의 법칙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무작정 끌리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유 없이 냉담해진다. 그 힘의 방향을 스스로 조정할 수 없다는 점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내 안의 자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어떤 사람은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달라붙어 있는지, 왜 어떤 기억은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계속 붙어 있는지. 하지만 이제는 억지로 떼어내려 하지 않는다. 자석은 어차피 자신이 가진 극을 바꿀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힘이 조금씩 약해질 뿐이다.

책상 위에 놓인 그 낡은 자석을 손끝으로 굴려본다. 한쪽이 다른 쪽을 향해 미세하게 움직인다.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다시 붙는다. 마치 내 안에서 반복되는 관계의 리듬 같다. 끌림과 이탈, 열망과 포기, 시작과 끝. 그것이 결국 인간의 방식이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석 같은 존재가 아니라, 자석 속의 철가루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힘에 의해 이리저리 흩날리다가, 잠시 붙었다가, 결국 흩어진다. 그러나 그 짧은 붙음의 순간이 존재를 증명한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니, 살아 있음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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