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책상 앞에 앉아 흩어져 있는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어낸다. 처음엔 그저 메모일 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마치 누군가의 유언장처럼 보일 때가 있다. “우유 사기”, “3시 회의”, “엄마한테 전화하기.” 별것 아닌 문장들이지만, 그 글귀 하나를 적기 위해 내가 그날 어떤 마음으로, 어떤 순간에, 어떤 조급함 속에서 펜을 들었을지를 떠올리게 된다. 포스트잇은 기억하기 위해 붙이는 것이라지만, 실은 잊어버리기 위해 붙이는 것이 아닐까. 마음에서 계속 맴도는 일을 잠시 외부로 떼어내기 위해, 내 앞에 붙여 두는 것.

붙였다가 떼어내는 마음의 방식
나의 방 벽에는 다양한 색깔의 포스트잇이 층층이 붙어 있다. 노란색에는 해야 할 일, 분홍색에는 하고 싶은 일, 연두색에는 하고 싶었지만 결국 하지 못한 일들이 적혀 있다. 어느 날은 그것들이 전부 내 삶을 규정하고 있는 규칙표처럼 보인다. 나는 포스트잇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 같다. 메모가 명령이 되고, 나는 그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조용한 병사처럼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포스트잇이란 원래 임시적인 물건이다. 쉽게 붙고 쉽게 떨어진다. 그 사소한 특성 속에 묘한 슬픔이 있다. 인간이 만든 기록 매체 중 가장 쉽게 버려지도록 설계된 물건. 종이는 종이인데, 보존하기 위한 종이가 아니라 버려지기 위한 종이. 내가 적은 문장들은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져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내가 완전히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포스트잇을 붙일 때마다 나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 든다. 붙이는 순간 마음속으로 작은 다짐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행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다짐을 ‘붙이는 동작’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붙이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마치 그 일의 무게를 종이에 옮겨서 벽에 전가한 것처럼.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모서리가 말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바짝 달라붙어 있던 종이가 공기와 시간의 습기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느슨해진다. 그러다가 툭 떨어진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멈춰 선다. ‘내가 이걸 잊고 있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잊어도 괜찮다는 뜻일까.’
포스트잇이 바닥에 떨어진다는 건, 어떤 책임이 수명을 다했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내가 할 일을 다 해서 떨어진 게 아니라, 이 일이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떨어진 것. 그때 포스트잇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며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붙일 때도, 뗄 때도, 나는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오래 남지 않는 말들에 대하여
포스트잇에 적히는 말들은 대체로 짧다. 길게 적으면 읽지 않게 되고, 읽지 않으면 붙이는 의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문장은 생략과 축약의 형태를 띤다. “12시 약”, “깔끔 정리”, “포장 택배.” 때로는 주어도, 동사도 없다. 그저 명령형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 짧은 말들 속에, 나는 어딘가에서 들리는 ‘살아야 하는 리듬’ 같은 것을 느낀다.
포스트잇은 시(詩)와 닮았다. 간결하고, 불완전하고,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꽃 사기”라고 적힌 메모를 보면, 그 꽃이 누구를 위한 꽃이었는지 떠오른다. “편지 보내기”라고 적힌 메모는, 아직 보내지 못한 마음의 무게를 환기시킨다. 포스트잇에 적혀 있는 건 사실 단순한 지시문이 아니라, 어떤 순간의 감정의 조각이다.
나는 가끔 그런 포스트잇을 버리지 못하고 노트에 모아둔다. 이미 끝난 다짐들, 실패한 계획들, 이미 지나간 하루하루. 누군가가 보면 쓸모없는 종이 조각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살아 있었다는 증거물이다.
어떤 포스트잇에는 “미안하다고 말하기” 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걸 떼어내지 못했다. 그 말을 아직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지금은 연락도 받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그 포스트잇을 버리지 못한다. 버리면 진짜 끝이 날 것 같아서. 포스트잇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유예(猶豫)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계속 떠밀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놓아버리지도 못하게 한다.
포스트잇을 바라보고 있으면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려고 쓰는 게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적는 것도 아니라, ‘지금은 붙잡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쓴다. 포스트잇은 영원한 다짐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만큼은’이라는 단서가 달린 다짐이다. 오늘이 지나면 의미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약속.
나는 여전히 책상 앞에 서서 포스트잇을 붙인다. 그리고 며칠 후 그것들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지켜본다. 언젠가는 그 벽이 텅 비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포스트잇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의 다짐도 결국 그러하다. 오래 남아야 진심이 아니라, 오늘만큼은 진심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을 꺼내 조심스럽게 펜을 든다. 그리고 아무 말도 쓰지 못한 채 한참을 멈춰 서 있다.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 이 마음을 어떤 단어로 고정시켜야 할지 망설여서다.
그래도 결국엔 적게 될 것이다. 아주 짧게, 아마 한두 단어로. 그리고 벽에 붙일 것이다.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게 내가 오늘도 살아 있다는 방식이니까.